유동성-1
1. 유동성(Liquidity)의 본질과 자산의 현금화
- 자산의 즉각적인 현금화 능력.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보유 자산(예: 주식, 국채, 회사채)을 손실 없이 즉시 현금으로 바꾸기 쉽다는 뜻임. 현금화 과정에서 가격을 크게 낮추지 않아도 매수자가 즉시 나타나는 상태를 '유동성이 좋다'고 표현함.
- 평상시의 경제 윤활유 역할. 경제 상황이 안정적일 때 유동성은 경제라는 거대한 엔진이 마찰 없이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수행함. 기업은 필요한 자금을 제때 조달하고, 투자자는 원하는 시점에 자산을 사고팔며 경제 활력을 유지하게 됨.
- 위기 시의 충격 흡수 기능. 위기가 닥치면 유동성은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에어백(Buffer) 역할을 함. 예를 들어, 경제 충격으로 자산 가격이 급락할 때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하면 투매 물량을 받아줄 대기 매수세가 존재하므로 가격의 추가 폭락을 방어할 수 있음.


2. 본원통화와 신용 창출(Credit Creation)
- 연준이 공급하는 본원통화의 정의. 본원통화(Monetary Base)는 연준이 찍어낸 '기초 자금'을 의미함. 이는 유동성의 씨앗과 같아서, 연준이 시중 은행에 직접 공급한 돈의 총량을 말하며 모든 통화 공급의 출발점이 됨.
- 신용 창출을 통한 통화량 증폭. 유동성의 총합은 본원통화가 시중 은행의 대출 시스템을 반복적으로 거치며(신용 창출) 불어난 통화량(M2 등)을 포괄함. 연준이 100달러를 공급하면 은행은 지급준비율을 뺀 나머지를 대출해주고, 이 돈이 다시 예금되어 또다시 대출되는 과정을 통해 시중 통화량은 10배 이상 증폭되는 마법이 일어남.
- 유동성 판단의 이중 기준.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시장 유동성을 파악하려면 두 가지를 함께 봐야 함. 첫째는 연준이 수도꼭지를 틀어 공급하는 '본원통화'의 양이고, 둘째는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대출을 해주어 돈을 불리고 있는지(신용 창출)에 대한 태도임.
3. 연준 대차대조표와 자산/부채의 의미
- 자산 매입과 화폐 발행의 등가성. 연준이 자산(국채 등)을 매입한다는 것은 민간이 가진 채권을 가져오고, 그 대가로 허공에서 생성한 달러(전산상의 숫자)를 은행 계좌에 꽂아준다는 뜻임. 즉, 연준의 자산 매입 행위 자체가 곧 시중에 돈을 찍어내는 행위와 동일함.
- 대차대조표의 양방향 동시 증가. 회계 원리에 따라 연준의 자산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부채(시중에 풀린 돈)가 동시에 늘어나게 됨. 연준 입장에서는 시중 은행에 넣어준 돈이 언젠가 돌려줘야 할 부채로 잡히기 때문에, '자산 증가 = 유동성 공급'이라는 공식이 성립함.
- 연준 대차대조표의 구성 항목. 이때 '자산(Assets)'은 연준이 사들여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 주택저당증권(MBS) 등을 말함. 반대로 '부채(Liabilities)'는 연준이 은행에 돌려줘야 할 돈인 '지급준비금'이나 민간이 실물로 쓰는 '현금(지폐)' 등을 의미함.
4. 유동성 보존의 법칙 (회계적 항등식)
- 유동성 총량의 회계적 항등식. 유동성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준의 대차대조표 공식인 **자산(Assets) = 부채(Liabilities: 지급준비금 + TGA + RRP + 현금) + 자본(Capital)**을 반드시 숙지해야 함. 이 식은 돈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 역할을 함.
- 부채 항목 간의 제로섬 게임. 만약 연준의 자산 규모가 고정(동결)되어 있을 때, 부채 항목 내부의 TGA(정부 통장)나 RRP(대기 자금) 잔고가 늘어나면, 항등식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머지 부채 항목인 지급준비금(Reserves)은 반드시 줄어들게 되어 있음. 이를 '구축 효과'와 유사한 내부 이동으로 이해할 수 있음.
- 자금의 소멸이 아닌 이동. 이 법칙은 돈이 시장에서 증발하는 것이 아니라, 연준이라는 장부 안에서 계정들 사이를 이동하며 시장 유동성에 영향을 미침을 증명함. 즉, TGA로 돈이 쏠리면 지급준비금이 말라 시장이 팍팍해지고, TGA에서 돈이 풀리면 지급준비금이 늘어 시장이 풍요로워짐.

5. 실물 현금 vs 지급준비금
-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의 자금 분리. 우리가 편의점에서 쓰는 지폐(Currency)는 실물 경제 소비에 주로 쓰이지만, 주식이나 채권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돈은 상업은행들이 연준 계좌에 쌓아둔 '지급준비금(Reserves)'임. 두 돈은 성격이 달라서, 지갑 속 현금이 아무리 많아도 은행의 지급준비금이 부족하면 금융 위기가 올 수 있음.
- 금융 시장의 실탄인 지급준비금. 지급준비금은 은행이 대출을 해주거나 투자를 할 수 있는 '실탄'이자, 예금 인출에 대비한 법적 의무 예치금임. 따라서 주식, 채권 투자자가 주시해야 할 진짜 유동성 지표는 시중의 현금 통화량이 아니라, 이 지급준비금 총량의 추이임.
- 지급준비금 변동의 결정 요인. 이 지급준비금 총량은 1차적으로 연준의 자산 매입(QE)이나 매각(QT) 정책에 의해 결정됨. 하지만 2차적으로는 앞서 설명한 항등식에 따라 재무부의 TGA 운용이나 시장 참여자의 RRP 이용 규모에 의해 수동적으로 변동되기도 함.
- 유동성 확보 vs 자본 건전성 규제. 지급준비금과 SLR은 모두 은행의 건전성을 위한 장치이지만 성격이 다름. 지급준비금은 고객의 예금 인출에 대비해 '예금(부채)'을 기준으로 일정 현금을 연준에 쌓는 제도임. 반면, SLR은 은행이 무분별하게 몸집을 불리는 것을 막기 위해 '총자산(노출액)' 대비 자기자본을 일정 비율 이상 유지하게 하는 자본 규제임. 즉, 전자는 '현금 유동성'에, 후자는 '자본 안정성'에 방점을 둠.
- 유동성 과잉이 불러오는 규제의 역설. 경기 부양을 위해 시중에 유동성이 넘칠 때, 은행의 지급준비금과 국채 보유량이 늘어나면 은행의 총자산(분모)이 커져 SLR 비율을 맞추기 어려워짐. 이 경우 은행은 건전성 규제인 SLR을 준수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보유 중인 국채를 내다 팔거나 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됨. 이는 지급준비금(유동성)이 많아도 규제 때문에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의 원인이 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