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긴축의 끝에서 시작된 유동성 공급의 역설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수년간의 양적 긴축(QT)을 공식 종료한 것은 2025년 12월 1일이었음.
- 그러나 불과 며칠 뒤, Fed는 시장에 다시 달러를 공급하기 시작했음. 이는 명백한 정책적 모순으로 보이며, 시장 참여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현상임.
- 한쪽에서는 자산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흡수하는 긴축을 종료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산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조치를 개시한 것임.
- 이러한 역설적 상황의 중심에는 미국 금융 시스템의 두 축인 연방준비제도(Fed)와 재무부(Treasury)가 존재함
본 글에서는 이 두 거대 기관이 어떤 수단을 통해 시장의 유동성을 조절하는지,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이며, 최근 정책들이 왜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지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함.
2.유동성 조절의 역사와 기본 원리
2-1.유동성이란 무엇인가
- 유동성(Liquidity)은 금융 기관이나 개인이 필요할 때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보유한 정도를 의미함.
- 금융 시스템 전체의 유동성은 시스템이 외부 충격 없이 채무를 이행하고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능력의 척도임.
- Fed의 핵심 임무 중 하나는 바로 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임.
2-2.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세계
-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Fed의 유동성 관리는 상대적으로 단순했음.
- 주요 수단은 공개시장운영(Open Market Operations, OMO)을 통해 연방기금금리(Fed Funds Rate)를 목표치 근처에서 미세 조정하는 것이었음.
- 당시 은행들은 최소한의 초과 지급준비금만을 보유하며, 유동성이 필요하면 은행 간 익일(overnight) 시장에서 자금을 차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 이 시기 Fed의 대차대조표는 경제 규모에 맞춰 점진적으로만 증가하는 예측 가능한 변수였음.
2-3.2008년, 모든 것이 바뀐 순간: 양적 완화(QE)의 등장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존의 통화정책 틀을 완전히 바꾸었음.
- 제로금리 상황에 도달하자 Fed는 금리 인하만으로는 경기 부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음.
- 이에 벤 버냉키 의장의 주도 하에 비전통적 통화정책인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QE)가 도입됨.
- QE는 중앙은행이 국채나 모기지 담보부 증권(MBS) 같은 장기 채권을 대규모로 매입하여 시중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임.
- 이로 인해 Fed의 대차대조표는 단순한 관리 대상에서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으로 변모함.
2-4.코로나19 팬데믹과 유동성 폭발
- 코로나19 팬데믹 위기에 대응해 Fed는 전례 없는 규모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했음
- 이 기간 Fed의 대차대조표 자산은 거의 9조 달러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함.
- 이는 금융 시스템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여 경제 붕괴를 막는 역할을 했으나, 동시에 인플레이션의 씨앗이 되었음.
2-5.양적 긴축(QT) 시대의 도래
-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Fed는 2022년 6월부터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QT)을 시작함.
- QT는 보유한 채권의 만기가 도래하면 재투자하지 않거나 직접 매각하여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정책임.
- 이 프로그램은 2025년 12월 1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Fed의 대차대조표는 약 9조 달러에서 6조 7천억 달러 수준으로 약 2조 2천억 달러가 축소되었음.
- 이는 시장에서 막대한 양의 돈을 거둬들이는 강력한 긴축 조치였음.
3.Fed의 유동성 조절 수단과 그 규모
통화정책의 '야전사령관' Fed
- Fed는 최대 고용, 물가 안정이라는 두 가지 핵심 목표(Dual Mandate)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무기를 사용함.
3-1. 정책 금리 조절 (규모: 경제 전반)
- 가장 전통적이고 잘 알려진 수단으로, 연방기금금리 목표를 조정함.
- 이는 은행 간 초단기 대출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모든 대출과 예금 금리의 기준점이 되어 경제 전반의 유동성 비용을 결정함.
- 규모를 특정 금액으로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경제 전체의 신용 흐름을 조절하는 가장 광범위한 수단임.
3-2.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IORB) (규모: 수백억-수천억 달러)
- 은행들이 Fed에 예치한 지급준비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는 제도임.
- IORB 금리를 올리면 은행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대출을 하기보다 안전하게 Fed에 돈을 맡기려 하므로 시중 유동성이 감소함.
- 금리 결정에 따라 은행 시스템 내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지급준비금의 향방을 조절하는 효과를 가짐.
3-3. 공개시장운영(OMO) - Repo & 역Repo (규모: 일일 수천억-수조 달러)
- Repo(환매조건부채권 매입)는 Fed가 단기적으로 채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임.
- 역Repo(Reverse Repo)는 반대로 Fed가 채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와 시중의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는 것임.
- 특히 역Repo는 시중의 과잉 자금이 몰리는 곳으로, 그 잔고가 1조~2조 달러를 넘나들며 단기 유동성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됨.
3-4. 재할인 창구(Discount Window) & BTFP (규모: 수십억-수천억 달러)
- 재할인 창구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은행에 Fed가 직접 자금을 빌려주는 '최후의 대부자' 기능임.
-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당시, Fed는 재할인 창구와 신설된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TFP)을 통해 단 일주일 만에 1,648억 달러의 긴급 유동성을 공급했음.
- 이는 위기 상황에서 Fed가 얼마나 빠르고 대규모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임.
3-5. 양적완화(QE) / 양적긴축(QT) (규모: 수조 달러)
- Fed의 유동성 조절 수단 중 가장 규모가 큰 '궁극의 무기'임.
- 수년에 걸쳐 수조 달러 규모의 자산을 매입하거나 매각(혹은 롤오프)하여 장기 금리에 직접 영향을 주고 시중 통화량을 조절함.
- 코로나 팬데믹 대응 QE는 약 4조-5조 달러 규모였으며, 이후 QT는 약 2.2조 달러 규모의 유동성을 흡수했음.
4.재무부의 유동성 조절 수단과 그 규모
재정정책의 '보급사령관' 재무부
- 재무부의 주된 역할은 정부의 재정을 관리하고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장 유동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침.
4-1. 국채 발행 (규모: 수천억-수조 달러)
- 재무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투자자들은 현금을 주고 국채를 사감. 이 과정에서 시중의 현금이 재무부로 흡수됨.
- 특히 단기 국채(T-bill)의 대규모 발행은 단기 자금 시장의 유동성을 빠르게 흡수하여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
- 분기별로 발표되는 국채 발행 계획은 조 달러 단위에 이르기도 하며, 이는 Fed의 QT에 버금가는 유동성 흡수 효과를 낼 수 있음.
4-2. 재무부 일반계정(TGA) (규모: 수천억-1조 달러 이상)
- TGA는 재무부가 Fed에 개설한 정부의 주거래 계좌임.
- 국민이 세금을 내면, 그 돈은 시중은행에서 빠져나와 TGA 계좌로 이동함. 이 과정에서 시중 유동성은 감소함.
- 반대로 정부가 재정지출을 하면, TGA 계좌의 돈이 시중은행으로 풀려나가 유동성이 증가함.
- TGA 잔고가 수천억 달러씩 변동하는 것은 그 자체로 Fed의 OMO에 맞먹는 강력한 유동성 조절 효과를 가짐.
5.2025년, Fed와 재무부의 충돌 혹은 공조?
사건의 발단: QT 종료와 RMP의 시작
- 2025년 12월 1일 QT가 종료된 후, Fed는 12월 12일부터 '지급준비금 관리 매입(Reserve Management Purchases, RMP)'을 시작했음.
- 초기 규모는 단기 국채 매입 약 82억 달러와 MBS 만기 재투자분 144억 달러를 합쳐 월 약 226억 달러 수준임.
- 시장은 이 규모가 필요시 월 400억 달러에서 최대 2,000억 달러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음.
관점 1: '이건 QE가 아니다' (Fed의 공식 입장)
- Fed는 RMP가 통화정책 완화를 의미하는 QE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함
- 이는 경제 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현금 수요를 맞춰주고, 은행 시스템의 지급준비금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기술적 조정'이라는 설명임.
- 2019년 9월, 지급준비금 부족으로 단기 레포 금리가 급등했던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선제적 안정화 조치라는 것임.
- 즉, 통화정책의 방향은 기준금리로 결정하며, 대차대조표 관리는 시스템 유지를 위한 별개의 작업이라는 입장.
관점 2: '사실상의 미니 QE다' (시장의 해석)
- 시장은 Fed의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에 주목함.
- Fed가 매달 수백억 달러의 채권을 사들여 유동성을 공급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완화적 효과를 낳는다는 것임.
- 특히, 이 조치는 재무부가 발행하는 막대한 규모의 국채를 Fed가 간접적으로 소화해주는 효과를 낳음.
- 정부의 재정 부담(정치적 요인)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경제적 요인)에 영향을 미치는, 소위 '재정의 통화정책화'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음.
양면성(Trade-off) 분석
- Fed가 RMP를 통해 단기 자금 시장의 안정을 취하면(긍정), 시장은 이를 유동성 공급 신호로 받아들여 자산 가격 버블이나 인플레이션 기대를 다시 자극할 위험이 있음(부정).
- 재무부가 안정적인 국채 발행을 통해 재정을 조달하면(긍정), 이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장기적으로 통화 가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음(부정).
의도는 기술적, 효과는 완화적인 이중성
- 현재 Fed와 재무부의 유동성 조절 정책을 종합하면, **'의도는 기술적 조정이나, 그 효과는 완화적'**인 이중적 성격을 띤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음.
- Fed의 목표는 시스템 안정일 수 있으나, 재무부의 막대한 자금 조달 수요가 존재하는 한, Fed의 자산 매입은 시장에서 유동성 공급 신호로 해석될 수밖에 없음.
-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가 단순한 회계장부를 넘어 시장의 기대를 형성하는 핵심 변수가 되었기 때문임.
- 결론적으로, 두 기관의 정책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재무부의 재정 정책이 Fed의 통화정책 운용 공간을 제약하는 상호작용이 심화되고 있음.
- 투자자들은 이제 기준금리뿐만 아니라, Fed의 대차대조표 규모 변화와 재무부의 분기별 국채 발행 계획을 함께 분석해야만 시장의 유동성 흐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
- 결국 Fed와 재무부라는 두 거인의 줄다리기가 금융 시장의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음.



